서천의 다양한 명소를 소개합니다
한산세모시는 섬세할뿐 아니라 청아한 멋이 있어 모시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특산품 중의 하나다.
한산 세모시는 섬세할 뿐 아니라 청아한 멋이 있어 모시의 대명사로 불린다.
백제시대로부터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 기슭에서 야생저마가 재배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으로 명성을 떨쳤다.
구전에 의하면 삼국시대 때 한산 건지산에 자생하고 있는 모시풀을 원료로 하여, 모시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므로써, 처음 옷감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모시풀도 이때부터 인공으로 재배되었다고 한다.
신라 경문왕 때에는 저포를 해외로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 때는 농가의 중요한 부업의 하나였으며, 화폐를 대신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택리지) 북거총편론을 보면 한산 모시는 섬세할 뿐 아니라 청아한 멋이 있어 모시의 대명사처럼 불린다. 이는 신라시대의 길쌈놀이와 함께 널리 전파되었다. 고려시대 명나라의 곡물로 유명했고,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으로 그 명성을 떨쳤다.
모시는 한자로 저(苧,紵), 저포(苧怖), 저마포(苧麻布)등으로 불리우고 우리나라 최초 문헌자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에서는 삼십승저삼단(三十升貯衫段)을 당나라에 보낸 기록이 있다. 계림유사(鷄林類事)란 책에서 저왈저모(苧曰苧毛), 저왈모시배(苧曰毛施背)란 기록이 보인다. 이는 일찍이 고려 시대에도 저마 섬유모, 저마포를 모시배라고 일컬었음을 나타낸다. 고려사(高麗史)는 혜종때 진나라에 보낸 세저를 마저여설(麻苧如雪)이라고 적어 있어 세저의 깨끗함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먼저포, 사저포는 원나라에서 이들 직물을 선호하여 수출을 요구해 온 기록도 많다.
한산모시관 홈페이지